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포스트파시즘 시대, 자유를 다시 묻다.
1. 자유는 여전히 새롭다 – 포스트파시즘 시대의 문제의식
21세기 민주주의 사회는 외형적으로는 자유롭고 평등한 체제를 갖추고 있지만, 그 이면에서는 새로운 억압이 자라고 있다. 강제적 폭력과 전체주의가 사라진 대신, 여론과 규범, 사회적 기대, 그리고 알고리즘이 결합하여 개인을 압박하는 새로운 형태의 통제, 이른바 ‘포스트파시즘(post-fascism)’의 징후가 나타났다. 이 체제는 직접적으로 억압하지 않지만, 개인의 삶을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프레임으로 규정하며 은밀하게 동질화를 요구한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는 다시금 "자유란 무엇인가"를 물어야 한다. 왜냐하면 문명의 발전에 지대한 역할을 했던 것이 인간의 자유이며, 이를 위해서도 문명을 발전시켰다고 단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유는 결코 단순한 개념이 아니다. 자유는 인간 복제나 안락사, 표현의 자유, 종교적 신념, 성적 정체성 문제에 이르기까지 인간 삶의 거의 모든 문제와 연결되어 있으며, 때로는 윤리, 법, 공동체 가치와 충돌한다. 게다가 사람마다 세계관과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자유에 대한 해석 또한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의 『자유론』(On Liberty, 1859)은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자유에 대한 유효한 철학적 사유를 제공한다. 그는 민주주의 사회의 ‘다수의 횡포’에 맞서 개인의 자유를 어떻게 지켜낼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단순한 방임(放任)이 아닌, 철학적 기준을 갖춘 자유의 구조를 제시했다. 우리는 『자유론』을 통해 자유의 개념을 더 정밀하게 사유하고, 오늘날 자유가 어떻게 위협받고 있는지를 되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2. 『자유론』의 핵심 원리와 철학적 구조
1) 자유의 세 가지 영역: 생각, 삶, 결사의 자유
밀은 자유를 구체적으로 세 가지 영역으로 구분한다. 첫째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이다. 그는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을 통해서만 진리에 접근할 수 있다고 믿었다. 침묵을 강요받는 의견이 진리일 수도 있고,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진리의 일부를 담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반론과 비판이 없다면 그것은 교조로 전락할 수 있다. 따라서 생각과 표현의 자유는 단순한 권리 차원을 넘어 사회 전체의 지적 건강성과 직결된다.
둘째는 삶의 방식에 대한 자유이다. 개인은 자신의 취향, 감정, 가치관에 따라 자율적으로 삶을 구성할 권리가 있다. 그 선택이 실패하거나 고통을 초래하더라도, 그것이 자기 자신의 선택이었다면 의미가 있는 것으로 타인의 강요에 의한 삶보다 인간적으로 더 성숙할 수 있는 길이다. 이는 밀의 자유론이 결과보다 자기 선택의 과정에 가치를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셋째는 결사와 행동의 자유이다. 타인과 자발적으로 모임을 결성하고 행동할 수 있는 권리 또한 자유의 핵심이다. 이 결사의 자유는 민주주의와 시민사회의 토대를 이루며, 공동체적 가치 형성에도 기여한다. 이 세 가지 자유는 모두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절대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며, 바로 이것이 밀의 핵심 원칙인 ‘해악 원칙(harm principle)’의 출발점이다.
2) 해악 원칙: 자유의 유일한 제한 기준
밀은 자유를 무제한적으로 옹호하지는 않았다. 그는 “개인의 자유는 오직 타인에게 해를 끼칠 경우에만 제한될 수 있다.”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이 해악 원칙은 자유와 국가 개입의 경계를 설정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무너질 위험이 있는 다리를 건너려 할 때, 그 사람을 강제로 막는 것은 자유의 침해가 아니라 자유의 보존이다. 그것은 그 사람이 위험에 빠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밀에게 자유란 단순히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발전을 향해 나아가는 합리적 선택이었다. 따라서 타인에게 실질적인 피해를 주지 않는 한, 각 개인은 자신의 몸과 정신에 대해 완전한 주권을 가져야 하며, 국가는 그 영역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타인에게 해를 주는 행위—물리적 폭력, 사기, 명예훼손 등—는 정당한 규제 대상이 된다. 이 원칙은 오늘날 표현의 자유와 혐오 표현, 공공보건 정책과 개인의 선택권 사이의 균형을 논할 때 여전히 유효하다.
3) 다수의 횡포와 개별성의 위기
밀은 민주주의가 다수의 지배로 전락할 위험성을 경고했다. 그는 고전적 독재보다 더 무서운 억압이 바로 ‘여론과 사회적 도덕’을 통한 억압이라고 보았다. 다수의 횡포는 정치적 권력만이 아니라, 사소한 관습과 통념을 통해 개인의 정신과 삶을 포위한다. 이는 개인의 독창성, 개성, 개별성을 말살하며, 결국 획일적인 사회를 만들어낸다.
밀이 역설한 것 중 하나는 ‘개별성(individuality)’이다.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스스로 설계하고 실천할 때 진정한 행복을 느낀다. 그 과정에서 실수나 고통이 따르더라도, 그것이 자율적인 선택이었다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개별성은 사고력, 감수성, 도덕적 판단력을 성장시키는 기반이며, 이를 억압하는 사회는 도태된다고 밀은 믿었다.
그렇다고 밀이 자유를 절대화하지 않았다. 그는 자유가 정신적으로 성숙한 개인에게만 적용될 수 있으며, 미성년자나 극단적으로 비이성적인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는 일정한 ‘선의의 간섭’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자유는 방종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위한 능동적 조건이기 때문이다.
포스트파시즘(Post-fascism), 민주주의 안의 파열음 ― 트럼프와 유럽 극우를 중심으로
여기저기 기웃기웃, 생각나는대로 적어가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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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자유론』은 왜 오늘날에도 읽혀야 하는가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은 19세기 중반의 고전이지만, 오늘날의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적 갈등을 성찰하는 데 여전히 중요한 철학서이다. 포스트파시즘적 현실에서는 다수의 이름으로 소수를 억압하고, 공공의 이름으로 개인을 침묵시키며, 윤리의 이름으로 표현을 통제하려는 경향이 점점 강화되고 있다.
우리는 과연 자유로운가, 아니면 자유를 강요당하고 있는가? 밀은 자유를 단지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추구하고 인간으로서 성장할 수 있는 조건으로 보았다. 자유는 생각하고 실수하며, 자기답게 살 수 있는 권리이자 가능성이다. 그래서 자유는 언제나 새롭고, 언제나 위협받으며, 언제나 다시 사유되어야 한다. 『자유론』은 우리에게 그 사유의 방법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