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휘

헷갈리는 문학 용어

가르치는 사과 2025. 4. 15.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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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서적 합일 vs 감정 이입

 

정서적 합일이란, 어떤 대상이 느끼고 있는 감정을 화자도 동일하게 느낀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쉬운 예로, 우리가 슬픈 영화를 보면서, 영화 속 주인공의 고통과 슬픔을 마치 내 것인 양 온전히 느끼며 같이 눈물 흘리고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바로 정서적 합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감정이입에서는, 감정이입의 대상이 실제로 화자와 동일한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내 슬픔을 표현하기 위해 새가 우는구나라고 말했다면, 이 때 새는 실제로 슬퍼서 울고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화자 자신이 너무나 슬프니까 저 새도 슬피 울고 있다고 착각한 거죠. (아무 감정 없는, 혹은 화자의 감정과는 다른 감정을 갖고 있는) 객관적 대상에 화자의 감정을 그대로 옮겨놓는(이입해놓는) 것이 감정이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객관적 상관물 vs 감정 이입

 

객관적 상관물(客觀的 相關物, objective correlative) 이란 감정을 객관화하거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공식 역할을 하는 대상물을 가리킨다. 엘리어트에 의하면 이는 어떤 특별한 정서를 나타내도록 제시된 외부적 사실들로, 구체적인 사물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정서를 환기시키게 된다고 한다.

여기에는 대상을 유정물(有情物)로 만들어 자신의 감정을 대상 속에 이입하는 감정 이입(empathy)의 방식, 주어진 외부 사물을 통해 자신의 정서를 표출하는 정서 환기의 자극제(stimulus)로 삼는 방식의 두 가지가 주로 사용되고 있다.

 

객관적 상관물이란 시인의 감정을 객관화하거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공식역할을 하는 '대상물'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특별한 정서를 나타내도록 제시된 '외부사실들'로서, 구체적인 사물들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정서를 환기시키게 됩니다. 감정이입은 대상을 유정물로 만들어 시적 화자 자신의 감정을 대상 속에 이입하는 기법입니다. 따라서 감정이입에서는 구체적 대상이 감정을 지닌 것으로 표현되며 의인화가 이루어집니다. 반드시 감정이 전면에 드러나죠.

 

예를 들어, 허난설헌의 봄비에서 봄비, 찬 바람, 살구꽃은 비 내리는 날에 홀로 지내는 화자의 고독한 정서를 간접적으로 환기시키는 대상, 외부사실들입니다. 따라서 객관적 상관물이고요, 윤선도의 견회요에서 시적화자는 기러기에 어버이를 그리워하는 자신의 심정을 감정이입한 것입니다. 기러기는 감정이입의 매개체가 되는 것이지요.

 

또다른 예로, 국어교과서에 청산별곡이 실려 있는데, '우러라 우러라 새여'에서 새가 운다고 화자가 말하는 것은 화자의 고뇌(감정)가 새라고 하는 대상에 감정이입된 것입니다. 여기에서 새는 사람처럼 우는 존재로 의인화되어 표현되고, 우는 행위를 통해 화자의 서글픈 감정이 직접적으로 전면에 드러납니다. 하지만 황조가에서 꾀꼬리는, 암수 서로 정답게 지저귀는 모습(외부적 사실)을 통하여 혼자인 유리왕의 외로운 처지를 대조시켜 보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다시 말해 꾀꼬리는 유리왕처럼 외로운 존재로 의인화되지 않고, 단지 유리왕의 외로움의 정서를 간접적으로 환기시키기 위해 시인이 의도적으로 제시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상관물이 되는 거죠.

 

3. 내재적 접근 방법 vs 외재적 접근 방법

 

1) 내재적 접근방법(내재적 관점)’

작품 안에서 작품을 감상한다는 것, 작품을 쓴 작가, 작품이 씌어진 시대배경이나 사회현실, 작품을 읽는 독자에 대한 고려 없이, 작품 안의 내용이나 형식, 표현 등만을 가지고 작품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내재적 접근방법(내재적 관점)’이라고 하죠. 내재적 관점으로 작품을 감상할 때는 주로 언어표현방식이나 작품구조등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예를 들어 시어의 함축적 의미, 시상, 이미지, 소설의 구조, 표현법 등에서 작품의 아름다움이나 가치를 찾는 거죠. 따라서 작품을 이해하고 감상하고 평가하는 기준이 오직 작품 내에만 들어있다고 해서 이 관점을 절대론적 관점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우리 눈 앞에 존재하는 작품 자체만 가지고 작품을 이해해야 하는 관점이라고 보아, '존재론적 관점'이라고 부르기도 하구요.

 

2) 외재적 접근방법(외재적 관점)’ 표현론적 관점, 반영론(모방론)적 관점, 효용론(수용론)적 관점

작품 밖에서 작품을 감상한다는 것은,작품을 쓴 작가가 어떤 성격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온 사람인지, 작품이 씌어진 시대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작품을 읽는 독자는 무엇을 느끼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에 초점을 맞춰서 작품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방법을 우리는 외재적 접근방법(외재적 관점)’이라고 합니다. 이 관점에서는, 작품에 씌어진 내용이나 형식, 표현만으로는 그 작품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가 파악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반드시 작품과 작품 외적인 요소-작가, 시대(사회현실), 독자-를 관련시켜 이해할 때 작품의 진정한 의미를 우리가 알 수 있게 된다고 보는 거죠.

우리는 이 외재적 접근방법의 세 가지를 각각 표현론적 관점, 반영론(모방론)적 관점, 효용론(수용론)적 관점이라고 구분해서 부릅니다. 표현론적 관점이란, 작품이, ‘작가의 체험이나 생각(사상), 정서를 표현해놓은 것이라고 보는 관점입니다. 따라서 이 관점에서는, 그 작품을 쓸 때 작가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었으며, 어떤 고민을 하고 있었고, 어떤 정서적 상태에 놓여 있었는지 등을 고려하여 작품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반영론적 관점이란, 작품은, 그 작품이 씌어진 시대의 사회현실반영해놓은 것이라고 보는 관점입니다. 작품은 시대현실을 그대로 모방해놓은 것이라는 의미에서 모방론적 관점이라고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효용론적 관점이란, 작품이 독자에게 어떤 효용(쓸모)’를 줄 것인지를 중심으로 작품을 감상하고 평가해야 한다는 관점입니다. 독자가 작품을 '수용'하는 데 초점을 맞춘 감상방법이어서 수용론적 관점이라고도 합니다. 이 관점을 가진 사람은, 어떤 작품에 아무리 아름다운 표현들이 많이 등장한다 해도 그것이 독자에게 어떤 감동이나 메시지를 전해주지 못한다면 별로 좋은 작품이 아니라고 평가할 것입니다.

** 여러분은 이 네 가지 중 어느 관점으로 작품을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고 생각하나요? ^^*

 

3) 네 가지 관점에 의한 작품감상의 예

 

지금까지 살펴본 네 가지 관점에서 작품을 감상한 예를 간단히 들어보죠. <무정>은 이광수의 생애가 투영된 작품이다라고 평가한다면, <무정>이라는 작품을 작가의 삶을 표현한 것이라고 보았으니, 표현론적 관점에서 작품감상을 한 것이겠죠.‘<흥부전>은 신분 체계의 변동, 빈부간의 갈등 등 조선 후기의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다라고 평가한다면, <흥부전>이라는 작품이 조선후기의 사회현실을 반영한 것이라고 보았으니, 반영론적 관점에서 작품감상을 한 것이겠죠. 조지훈의 <승무>는 늘 불평, 불만만 일삼는 우리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작품이야.’라고 평가한다면, 독자인 우리들에게 <승무>라는 작품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평가하고 있으니, 효용론적 관점에서 작품을 감상했다고 볼 수 있겠죠. 서정주의 <추천사>는 하늘, 구름, 달로 대변되는 천상세계를 상징하는 심상과 수양버들 나무, 풀꽃더미, 나비새끼 등 지상세계를 상징하는 심상이 대립적 관계를 이루고 있다라고 평가한다면, <추천사>라는 작품을 작품 내에 표현된 대립된 이미지를 통해 감상했으니, 내재적 관점에서 작품감상을 했다고 볼 수 있겠죠.

 

참고로, 지금까지 살펴본 네 가지 감상방법을 모두 활용하여 작품을 감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함을 강조하는 것이죠. 작품의 총체적이고 통일적인 의미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표현론적, 반영론적, 효용론적, 절대주의적 관점을 통합하여 연구하는 방법이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이를 종합론적 방법이라고 합니다. ^^*

 

4. 시점 vs 거리

 

1) 시점

시점이란 말 그대로 서술자가 작품을 바라보는 각도, 즉 지점을 의미합니다. Point of view를 번역한 용어인 셈입니다.

 

흔히 소설에서 서술자가 작품 안에 존재하는 인물 중의 한 사람인 󰡐󰡑로 나타나면 1인칭 시점이라고 합니다. 작품 안에 존재한다는 것은 󰡐󰡑도 소설 속의 사건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하는 사람 중의 한 명이란 뜻입니다. 이 때 자기의 내면까지 표현하는 지점에 있으면 1인칭 주인공 시점이라 하고, 반면에 타인의 행동이나 대화 등을 관찰하는 입장에서 서술하면 1인칭 관찰자 시점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이상의 <날개>에 나오는 나는 무기력한 생활을 영위하면서 아내의 매매춘 행위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자기의 내면을 표현하는 사람이므로 전자에 해당하고, <사랑 손님과 어머니>의 옥희는 어머니와 아저씨의 관계를 옆에서 바라보며 주로 자기가 관찰한 '어머니'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으므로 후자에 해당합니다.

 

그런가 하면 서술자가 작품 밖에서 사건을 바라보는 것을 일컬어 3인칭 시점이라고 합니다. 사건 밖에 있다는 것은 서술자가 직간접적으로 사건을 체험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소나기>󰡐소녀는 소녀를 보자 그가 공 윤초시네 증손녀딸이란 걸 알 수 있었다󰡑라고 시작됩니다. 이런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 주는 서술자는 소년이거나 소녀가 아닙니다. 그는 사건 밖에 있는 존재입니다. 작품 밖에 있는 존재가 등장인물의 생각, 감정 등을 속속들이 알고 있어서 등장인물의 내면 심리까지도 표현해내는 것을 전지적 작가 시점이라고 하고, 등장인물의 외면만을 관찰하고 묘사하여 내면 심리를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작가 관찰자 시점이라고 합니다.

 

(참고로, 3인칭 제한 시점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작중의 모든 인물을 3인칭으로 서술하되, 그 중 한 인물에 초점을 맞춰 그 인물이 다른 인물들을 보고 듣고 생각하는 관점에서 서술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1인칭 관찰자 시점과 내용이 유사하지만, 󰡐󰡑가 아니라 󰡐󰡑로 표현되는 인물의 관점에서 다른 인물의 행동이나 대화 등을 관찰한다는 점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죠. ^^*)

2) 거리

문학작품(주로 소설)에서 논해지는 󰡐거리󰡑라는 것은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거리를 말하는 것이고, 따라서 무슨 수학공식처럼 이 시점에서는 거리가 멀고, 저 시점에서는 가깝다고 무조건적으로 단정짓기는 사실 곤란합니다. 거리감이라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니까요. 다만,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느끼는 거리감, 일반적으로 논의되는 것들이 있어 소개하는 것이니, 이 점 유의해서 다음 내용을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

 

 

서술자-인물의 거리

 

1. (1,3인칭)관찰자 시점

서술자는 인물의 심리를 독자에게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거리가 멉니다. 그러나

 

2. 주인공과 전지적시점

서술자가 인물의 심리를 독자에게 자세히 설명해주지요. 그래서 가깝습니다.

 

서술자-독자의 거리

 

1. 관찰자 시점

서술자는 독자에게 관찰한 내용을 설명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거리가 멀겠죠!

 

2. 주인공과 전지적 시점

서술자는 독자의 속마음까지 몽땅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설명해줍니다. 고로 거리가 가깝습니다.

 

인물-독자의 거리

 

1. 관찰자 시점

독자 기준으로 인물의 심리를 전혀 알 수 없는 독자는 의도적으로 자세히 따져볼 수밖에 없습니다, 가까이 가서. 그러므로 가까이 가서 꼬치꼬치 따져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거리가 가까워질 수밖에 없겠죠

 

2. 주인공, 전지적 시점

독자를 기준으로 독자는 그냥 가만히 있어도 됩니다. 왜냐하면 주인공이나 전지적 서술자가 모든 것을 다 알려주므로 굳이 고민할 것도, 생각할 것도 없이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됩니다. 그래서 멀다고 하는 것입니다.

 

 

1인칭 주인공 시점이나 전지적 작가 시점은 서술자가 등장인물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무엇이든지 이야기할 수 있는 시점이지요. 따라서 이런 경우에는 서술자가 인물과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술자 입장에서 보면 '내가 속마음까지 전부다 알고 있는 친구'가 등장인물인 셈이니까요. 심지어 1인칭 주인공 시점은 서술자가 곧 등장인물인 주인공 󰡐󰡑가 되잖아요. 그러니 매우 가까울 수밖에 없죠. 반대로 이런 경우 독자는 등장인물에 대해 멀다고 느끼게 됩니다. 서술자가 인물의 마음속 이야기까지 모든 이야기를 독자에게 친절히 다 해주니까, 독자로서는 등장인물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이해할 필요가 없게 되죠. 그냥 가만히 앉아서 듣기만 하면 되니까요. 따라서, 독자와 인물간의 거리는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독자와 서술자의 관계를 생각해보죠.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소설은 수필과 같이 ''의 이야기를 서술자가 독자에게 직접 들려주기 때문에, 독자와 서술자의 거리는 가까워집니다. 전지적 작가 시점의 경우도 서술자가 등장인물의 성격과 생각을 속속들이 독자에게 친절히 알려주기 때문에 독자는 서술자를 가깝게 느끼게 됩니다. 독자와 서술자의 거리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이 전지적 작가 시점보다 좀더 가깝죠.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소설에서는 서술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독자에게 직접 들려주니까요.

 

반대로 1인칭 관찰자 시점이나 3인칭 관찰자 시점(작가 관찰자 시점)에서는 서술자도 등장인물의 속마음을 잘 모르니까, 등장인물을 잘 관찰하여 그들의 말이나 행동을 표현하는 데 주력합니다. 따라서 서술자와 인물 사이의 거리는 멀다고 느낄 수밖에 없지요. 반면에 독자는 서술자의 관찰에 의해 보여진 외부 행동이나 말을 통해, 등장인물의 내면을 추리하고. 상상하고. 판단해야 하므로, 노력을 한껏 기울여 집중해야 합니다. 따라서, 인물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하죠. 그래서 독자와 인물간의 거리는 가까워지게 됩니다. 관찰자 시점은 주로 󰡐보여주기 방식(showing)󰡑을 많이 취하기 때문에, 서술자와 독자 사이의 거리는 멀게 느껴집니다. 서술자가 독자에게 이야기를 직접 전달해주는 것이 아니라, 서술자도 등장인물들의 내면이 아닌 외부만을 관찰하여 우리에게 보여주니까요.

 

** 1인칭 주인공 시점이나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서술자는 인물에 관한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했죠. 그러면 인물은 서술자와 친한 존재가 되잖아요. 그러니 상대적으로 나(독자)와는 거리가 멀어지죠. 즉 그 인물은, 서술자가 알고 있는, 서술자 머리 속에 있는 인물일 뿐, 독자는 그 인물을 객관적으로 알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독자와 인물의 관계는 멀다고 할 수 있지요. 반면, 1인칭 관찰자 시점이나 3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독자는 󰡒서술자가 익히 알고 있는, 서술자의 머리 속에 있는 인물󰡓이 아니라 󰡒그냥 객관적으로 보여지는(관찰되는) 인물󰡓을 접하게 되니, 1인칭 주인공 시점이나 전지적 작가 시점과 비교해볼 때 등장인물에 대해 상대적으로 가깝다고 느낄 수 있죠.

예를 들어, 어떤 남자(여자)를 내 여자친구(남자친구)의 남자(여자)로 알게 되는 경우와, 소개팅 자리에서나 거리에서 우연히 알게 되는 경우를 비교해보세요. 전자의 경우에는 그 남자(여자)󰡐친구의 사람󰡑으로 인식되어 확실히 거리감이 느껴지겠지만, 상대적으로 후자의 경우에는 그런 인식이 없으니 거리가 좀더 가까워지겠죠. ^^*

 

5. 인물제시방법 vs 거리

 

시점 외에도 인물제시방법에 의해 서술자-독자-인물 간의 거리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주로 보여주기 기법(showing)이 사용되면, 서술자가 등장인물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관찰하는 입장에 놓이므로, 서술자와 등장인물 사이에는 거리가 다소 멀게 느껴집니다. 반면 말하기 기법(telling)이 사용되면, 서술자가 등장인물의 심리나 감정을 직접적으로 그대로 드러낼 수 있기 때문에 등장인물과의 거리가 거의 없게(가깝게) 됩니다.

 

6. 반어 vs 역설

 

1) 반어

반어(Irony)는 희랍 희극에 등장하는 Eiron(능청 떠는 사람)에서 유래했습니다. 늘 자기 생각을 분명하게 드러내지 않고 숨기거나 바보처럼 행세하면서 허풍쟁이 등장인물인 알라존을 골탕먹이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아이러니라는 영어나 이로니라는 프랑스어는 바로 이 인물의 명칭에서 갈라져 나온 말입니다. 이 말의 핵심은 주장(속마음, 표현 의도)과 사실(표현 결과)이 상반된다는 것입니다. <진달래꽃>의 시적 자아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라고 말합니다. 겉에 드러난 표현으로만 보면 이별을 용인하는 태도를 보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보내 드릴 수 없다, 보내 드리지 않겠다'라는 마음의 표현이라고 해석됩니다. 그래서 흔히들 반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일상 생활에서도 반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령 크다고 해야 할 것을 작다고 하거나, 마음이 통하는 친구에게 '원수'''이니 하는 경우지요.

 

2) 역설

역설(paradox)para(초월하다, 뛰어넘다)doxa(통념, 의견, 상식)이 결합된 말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불합리해 보이지만 그 안에 어떤 진실이나 교훈을 담고 있는 말입니다.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라는 표현은 그 자체만 보면 불합리한 진술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님에 대한 끊임없는 구도의 자세가 담겨 있습니다. 역설 역시 일상 생활에서 많이 사용됩니다. '지는 게 이기는 거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도 역설에 해당합니다.

 

3) 반어와 역설은 어떻게 구별할까?

반어는 그 표현이 사용된 상황과 관련지어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 여자가 내게 "당신은 참 멋져요."라고 말했다면, 그것은 표현과는 다른 속뜻(?)을 담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이것은 반어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그 말을 한 사람이 내 아내라면, 진심으로 멋지다고 생각해서 한 말이라면, 이것은 반어는 아닙니다. '제 눈에 안경'이듯이 착각일 수는 있어도 말입니다^^;

역설은 그 자체의 문맥만으로도 논리적 모순이 발생합니다.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찬란한 슬픔의 봄', '외로운 황홀한 심사'처럼 표현 안에 이미 논리적으로 불합리한 사실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역설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때는 그 자체로 의미에 모순이 있는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7. 미적 범주

 

모든 문학작품에는 󰡐있는 것󰡑󰡐있어야 할 것󰡑이 존재합니다. '있는 것'이란 현재 작품에서 보여지고 드러나는 것이고, '있어야 할 것'이란 그 작품(의 주인공)이 지향하는 바나 그 작품 이면에 존재하는, 일종의 전제된 무엇을 의미합니다. 󰡐있는 것󰡑󰡐있어야 할 것󰡑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느냐에 따라, 우리는 문학작품에서 네 종류의 아름다움을 각각 느끼게 됩니다.

그 둘이 서로 대립되어 나타나면 비장미와 골계미를 느끼게 되고, 그 둘이 서로 융합되어 나타나면 우아미와 숭고미를 느끼게 되죠. 숭고미와 우아미, 비장미와 골계미는, 󰡐있는 것󰡑󰡐있어야 할 것󰡑 중 어느 쪽에 의해 융합 혹은 대립이 이루어지느냐에 따라 구분됩니다. 다시 말해, 있어야 할 것에 의해 융합이 이루어지면 숭고미, 있는 것에 의해 융합이 이루어지면 우아미가 느껴지고, 있어야 할 것을 긍정하고 있는 것을 부정할 때 비장미, 있는 것을 긍정하고 있어야 할 것을 부정하고 파괴할 때 골계미가 느껴집니다.

 

먼저, <제망매가>라는 향가작품을 생각해봅시다. 이 작품에서 현재 󰡐있는 것󰡑은 누이의 죽음으로 인한 이별이고, 󰡐있어야 할 것󰡑은 미타찰에서 다시 만나야겠다는 기대입니다. 이 향가의 시적 화자는 누이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지만, 누이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해 괴로워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불교적 신앙을 바탕으로 미타찰에서의 새로운 만남을 기약하며, 슬픔을 극복하고 있습니다. 누이의 죽음이라는 슬픈 현실-있는 것-, 극락 세계에서 다시 만날 것-있어야 할 것-에 대한 믿음으로 극복하고 있는 거죠. 이런 작품에서 우리는 󰡐숭고한 아름다움󰡑을 느낀다고 얘기합니다. 숭고미는 모순된 상황에 처해 자연의 이상적인 질서와 조화를 추구하려는 정신과 태도가 두드러질 때 잘 드러납니다.

이번엔 윤선도의 연시조 <어부사시사>를 생각해봅시다. 윤선도는 <어부사시사>를 통해 자연 속에서 한가롭게 살아가는 삶의 즐거움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있는 것󰡑은 어부의 즐거운 생활이고, 󰡐있어야 할 것󰡑은 그렇게 지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다시 말해 있는 것과 있어야 할 것은 딱히 구분되어 있지 않습니다. 현실 생활이 이미 자신이 바라는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 우리는 󰡐우아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고 이야기합니다. 우아미는 작가가 주로 고상함과 순수함을 추구할 때 형상화되는 아름다움이죠.

 

이제, 비장미를 생각해봅시다. 혹시 조선 선조 때의 문인인 임제가 쓴 한문단편소설 <원생몽유록>을 아시나요? <원생몽유록>은 생육신의 한 사람인 원호를 주인공으로 하여 사육신과 단종의 사후생활을 그린 작품입니다. 이 작품에서는 현명한 임금과 충성스런 신하가 참혹한 지경에 이른 상황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곧 󰡐있는 것󰡑이죠. 하지만 이 작품에서 󰡐있어야 할 것󰡑은 현명한 임금과 충성스런 신하가 마땅히 승리해야 한다는 당위입니다. 이 둘은 서로 대립되는 관계에 놓여 있죠. 이 작품에서 임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당연히 󰡐있어야 할 것󰡑, 즉 현명한 임금과 충성스런 신하가 흥하는 세상이 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실제 󰡐있는 (잘못된) 󰡑을 부정하거나 바꾸려 하고, 󰡐있어야 할 (진실된) 󰡑을 긍정하고 있죠.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느끼게 되는 아름다움이 비장한 아름다움입니다.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이 현실에서 실현되지 못하고, 주인공은 좌절할 때, 우리는 비장미를 느끼게 됩니다. 비장미는 슬픔, 고통, 절망 등의 감정을 예술적으로 표현할 때 잘 드러납니다.

 

마지막으로, 골계미를 생각해봅시다. 우리의 전통 가면극인 <봉산탈춤>은 다들 아실 겁니다. 이 봉산탈춤에는 양반에 대한 풍자와 신랄한 비판이 담겨 있어, 우리에게 통쾌한 웃음을 유발합니다. 이 작품에서 󰡐있는 것󰡑은 양반에 대한 말뚝이의 항거입니다. 하지만 원래 󰡐있어야 할 것󰡑은 양반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규범입니다. 양반에 대한 항거와 복종은 서로 대립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비장미의 상황과 유사합니다. 하지만 <봉산탈춤>에서는 󰡐있어야 할 것󰡑󰡐있는 것󰡑에 의해 무너지는 대신, 󰡐있는 것󰡑󰡐있어야 할 것󰡑을 파괴합니다. 그리고 대개 󰡐있어야 할 것󰡑은 나쁜 것, 무의미하고 거짓된 것이죠. 따라서 이것이 파괴될 때 우리는 통쾌함을 느끼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타나는 아름다움이 골계미입니다. 골계미는 주로 풍자정신의 바탕이 되죠.

 

 

8. 분절 구조 vs 분연체, 분장체, 분절체

 

*분절체 :형식적 연의 나눔 (=분장체, 연장체, 분연체)

=> 고려속요, 경기체가, 악장

 

*분절 구조: 의미적인 나눔 (=분절 형식)

=> 향가, 경기체가, 악장

 

분절 구조란 한 연에서 나누어지는 구조를 말합니다. 10구체 향가의 경우 4-4-2로 나뉘고, 경기체가의 경우 전대절-후소절로 나누어집니다. 분장체(=분연체, 분절체)는 작품 전체의 구조를 볼 때, 형식적 반복이 있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노래가 1, 2, 3절로 나누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고려가요에서 사모곡 등은 단연체이고, 서경별곡이나 동동은 분연체입니다. 경기체가의 경우 분절 구조(전대절-후소절)이면서 분장체(1~8)지요. 이러한 용어들은 작품을 직접 살펴보시면 이해가 빠를 것입니다.

 

 

찬기파랑가는 단연이며, 3-5-2로 의미상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분절 구조입니다. (다른 10구체 향가는 대개 4-4-2로 나누어지죠.)

 

 

서경별곡의 경우 1, 2, 3연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분연체(=분장체, 연장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림별곡의 경우, 1~8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분장체입니다. 그리고 각 장은 4행까지의 전대절과 6행까지의 후소절(4-2)로 나눌 수 있습니다. 분절 구조입니다. 그러므로 한림별곡은 분장체이면서 분절 구조입니다.

 

9. 공감각적 심상 / 감각의 전이

 

1) 공감각적 심상

공감각적 심상(이미지)이란, 하나의 이미지를 다른 이미지로 전이시켜 복합적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 한 가지 감각만으로 떠올린 영상이 아니라 두 가지 감각 이상을 통해 떠올린 영상이 되겠죠. 하지만 두 가지 이상의 감각적 이미지가 아무 연관성 없이 나란히 제시되어 있는 것을 공감각적 이미지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둘 사이에는 어떤 관련이 있어야 합니다. , 공감각적 이미지가 성립하려면, 하나의 이미지가 다른 이미지로 바뀌는’(전이되는) 감각의 전이(轉移)가 일어나야 하는 거죠. 단순하게 감각을 늘어놓아서는 감각의 전이가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호수에 돌을 던지니 퐁당하면서 원을 그리며 파문이 인다.'라는 표현에는, '퐁당'이라는 청각적 이미지와 '파문이 인다' 라는 시각적 이미지의 두 감각적 이미지가 복합적으로 나타나 있지만, 이것을 공감각적 이미지라 부르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공감각적 이미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떤 감각의 이미지가 다른 어떤 감각의 이미지로 바뀌었는지를 찾아낼 수 있어야겠죠.

 

2) 감각의 전이- <~~>

감각의 전이에 대해 자세히 살펴봅시다. 어떤 감각이 다른 어떤 감각으로 전이되었는지를 찾아보기 위해서는, 먼저, 시적 화자가 처음으로 받아들인 감각을 찾아내어야 합니다. 이것이 화자가 본래 표현하고자 하는 이미지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 이미지를 표현하는 또 다른 감각의 이미지를 찾아보세요. 그것은 수식어처럼 씌어져 있는 부분일 수도 있고, 본래의 이미지를 서술하는 식으로 표현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바로 이 단어의 이미지가, 본래 이미지에 덧입혀진 이미지로서, 전이된(바뀌어진) 이미지입니다. 예를 들어볼게요.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 - 김광균, <외인촌>

여기에서 시적 화자가 본래 표현하고자 한 것은 종소리입니다. , 처음에 느낀 것은 종소리의 들림이죠. 따라서 처음 느낀 이미지는 청각적 이미지입니다. 그런데 종소리가 푸르다고 하네요. 색깔(시각적 이미지)를 입혔군요. 또 이 종소리는 분수처럼 흩어지는데, 분수처럼 흩어지는 것도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니까 시각적 이미지겠죠. 역시 종소리에 시각적 이미지를 입힌 거죠. 원래 표현하고자 한 것은 종소리로서 청각적 이미지이지만, 거기에 시각적 이미지를 덧입힌 겁니다. , 청각적 이미지-종소리-가 시각적 이미지-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로 바뀐(전이된) 것이죠. 따라서 이런 공감각적 이미지를 우리는 청각의 시각화라고 말합니다.

 

금으로 타는 태양의 즐거운 울림’ -박남수, <아침 이미지>

시적 화자가 보고 있는 것은 금으로 타는 태양, , 금빛으로 타오르는 태양입니다. 시각적 이미지이지요. 하지만 이것이 울린다고 서술되어 있습니다. 태양이 울린다는 것은 말이 안 되지만, 시에서는 허용되는 표현입니다. 울린다고 함으로써 소리나는 것처럼 표현한 거죠. , 청각화입니다. 그러면 기본 바탕인 시각적 이미지-태양-에 청각적 이미지-울림-을 입혔으니까, 시각의 청각화라고 말할 수 있겠죠.

 

 

- 작품 속에 나타난 공감각적 표현들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 (청각의 시각화) - 김광균 시 <외인촌(外人村)>

피부의 바깥에 숨이는(스미는) 어둠(시각의 촉각화)- 김광균 시 <와사등(瓦斯燈)> 3

부서지는 얼음소래/ 날카로운 호적(呼笛)같이 옷소매에 스며든다(청각의 촉각화) -김광균 시 <성호부근(星湖附近)>

향료(香料)를 뿌린 듯 곱다란 노을(시각의 후각화)- 김광균 시 <데생>

자욱한 풀벌레 소리 발길로 차며(청각의 시각화)- 김광균 시 <추일서정>

종소리 빗긴다. (청각의 시각화) - 김억 시 <봄은 간다>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촉각의 시각화)-윤동주 시 <자화상>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청각의 후각화)-한용운 시 <님의 침묵>

()으로 타는 태양의 즐거운 울림(시각의 청각화)-박남수 시 <아침 이미지>

동해 쪽빛 바람 (촉각의 시각화)-유치환 시 <울릉도>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 (청각의 시각화) -서정주 시 <문둥이>

온 몸에 햇볕을 받고 ()은 부르짖고 있다. (시각의 청각화)-이호우 시조 <깃발>

금빛 게으른 울음(청각의 시각화)-정지용 시 <향수>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시각의 청각화)-정지용 시 <향수>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청각의 시각화)-정지용 시 <향수>

구렁에 물소리/ 몸에 감겨 스며드는 (청각의 촉각화)- 이태극 시조 <삼월은>

 

10. 의인법 vs 활유법

 

활유법이란 무생물에 생명을 비유하는 방법입니다. 의인법무생물이나 동물에 인간적 속성을 부여하는 것이라면, 활유법무생물을 생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즉 활유법에서는 반드시 인간적인 속성을 부여할 필요는 없습니다.

 

; "나무는 따가운 햇살아래에서 하늘높이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냉장고는 배고픈 우리에게 크게 입을 벌렸다."

(고개를 쳐드는 것이나 입을 벌리는 것은 사람뿐 아니라, 동물도 할 수 있는 행동입니다.)

 

; "백구는 먼 길을 돌아 다시 우리에게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는 떠나가지 않겠다며 나를 끌어안고 흐느끼고 있었다."

"플라타너스는 나에게 부끄럽지 않냐고 속삭이고 있었다."

(흐느끼는 것이나, 속삭이는 것은 인격성이 부여된 것으로, 인간의 행동입니다.)

 

11. 대유(환유) vs 대유(제유)

 

대유법 중의 두 가지 환유법과 제유법은 부분으로 전체를 비유하는 데 공통점이 있으나, 그 부분의 성격이 약간 다르다. 환유법은 비유하려는 대상의 속성으로 전체에 비유하는 수사법이고, 제유법은 부분으로 전체에 비유하는 수사법이.

예를 들어, '난 빵만으로 살 수 없다'고 하면, '''물질'의 부분(일부)로써 '물질적 풍요'라는 개념 전체를 비유한 것이다. 또 머리 수가 사람 수를, 일손이 일꾼을, 돛이 배를 비유하여 일부분으로 전체를 나타내는 제유법의 예들이다.

'철수의 아버지는 스타이시다'라고 하면, '스타'는 군인장성의 계급을 상징하는 속성으로 특정 직업이라는 전체를 비유하는 것입니다. 또 백발은 노인을, 왕관은 왕을 비유하여 환유법이 사용된 것이다. 이렇게 신체적 특징이나 도구 등의 속성으로 전체를 비유하는 수사법을 환유법이라고 하는 것이다. 부분과 속성의 차이로 두 가지 수사법의 차이를 이해하면 된다.

 

12. 피카레스크 vs 옴니버스

 

피카레스크의 유래

사회에 대한 관심을 가지면서 출발한 서구의 악한소설(惡漢小說)’을 피카레스크 소설이라 한다. 16세기 중엽의 스페인에서 시작이 되었으며, 나중에는 영국에서 더욱 성행하게 된다. 특히 18세기 산업혁명으로 인해 초래된 사회 변화 과정에서 나타하기 시작한 사회범죄의 악과 모순들이 작품 속에 반영되어 나타났는데,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그려냄으로써 일반사람들의 피해 가능성을 줄이고자 하는 목적에서 창작된 소설이 악한소설이다. 에드윈 무어(Muir)는 악한소설은 수많은 상황과 다양한 대상을 제공하여 풍자적, 해학적, 비판적 묘사를 하는 데 목적을 둔다고 했다.

 

악한 소설이 취하고 있는 형식을 두고 피카레스크식 구성이라고 한다. 구성면에서는 인과 관계에 의한 사건의 치밀한 진행보다는 각기 독립된 여러 가지의 사건들을 개별적으로 나열해 가는 병렬적 구성 방식을 취한다. 그러나 개별적 이야기는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이야기틀에 속한다.

 

이야기 (1) + 이야기(2) + ......... = 전체의 이야기 틀

 

복카치오의 데카메론이 대표적이며, 우리나라의 경우는 박태원의 세태소설인 천변풍경이 대표적이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비치는 청계천 주변의 풍광과 세태를 순간순간 포착하여 연결해 나간 소설이다. 사건들 간의 긴밀한 연관관계는 없다.

 

피카레스크식 구성

피카레스크식 구성은 단순 구성이나 복합 구성처럼 통일성 있게 짜여 있는 구성이 아니라 각각의 독립된 이야기들이 연속해서 전개되는 구성인데, 이 때 이야기의 하나하나는 독립해 있으면서 전후 맥락이 있어야 한다. 이는 16세기 중엽에서 17세기에 걸쳐 유행했던 악한 소설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러한 구성은 보카치오의 '데카메론' 같은 소설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매일 한 사람이 한 편씩 열 명의 사람이 열편의 이야기를 십 일간 계속하여 백 편의 이야기를 모은 '데카메론'은 동일한 주제의 작품이 열편씩 진행되는 가운데 당대 이탈리아의 세태와 풍속을 섬세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또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과 같은 연작소설이나 홍명희의 임꺽정도 이에 속한다.

 

옴니버스식 구성과의 차이점

옴니버스는 '합승마차'라는 뜻으로 마치 합승마차가 승객이나 이동의 목적은 달라도 크게 보면 하나의 종착역을 향해 달린다는 점에서, 서로 작은 주제와 인물이 다르다고 해도 거대한 주제가 동일한 경우를 옴니버스식 구성이라고 한다.

 

피카레스크식 구성은 독립된 각각의 이야기에 동일한 인물이 등장하여 여러 가지 이야기를 전개하는 구성방식이다. 하나의 주제나 제목 아래 몇 개의 독립된 이야기가 모여 있다는 점에서 옴니버스식 구성과 유사하지만 옴니버스식 구성은 서로 다른 중심인물이 등장한다는 점이 다르다.

 

 

<옴니버스식 구성>

동일한 주제 --<다른 주인공, 이야기>--> 함께 묶음. 예) 봉산탈춤.

일화 + 일화 + 일화 : 동일 주제

 

 

<피카레스크식 구성>

동일한 주인공 --<다른 사건>--> 동일한 주제 (연작 소설 형식)

A + B + C : 동일 구성

 

 

예를 들어 동일한 주인공이 매번 다른 사건을 해결하는 '셜록 홈즈 전집'은 피카레스크식 구성이며, 가면극 '봉산탈춤'은 옴니버스식 구성이다. 왜냐하면 봉산탈춤의 노장 과장은 노장과 취발이, 양반 과장은 말뚝이와 양반 삼형제, 미얄 과장은 미얄과 영감이 등장하여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러나 봉산탈춤의 각 과장은 모두 반봉건, 근대 지향적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13. 피카레스크 vs 옴니버스

 

옴니버스식 구성이라는 말은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몇 개의 이야기로 짜여있는 글을 말하는 것이다. 소설보다는 주로 영화에 주로 사용되는 말인데요, 연작(소설)이 주인공이 같다면 옴니버스식 구성은 주제가 같다.

옴니버스식 구성에는 거짓말(샘터), 어젯밤에 우리아빠가(샘터)를 들 수 있겠다. 작업 동인이라는 이름 아래 12명의 소설가가 전자는 '거짓말', 후자는 '분노'라는 테마를 가지고 작업한 소설집이다. 혹은 최인석의 내가 사랑한 귀신이라는 소설은 한 판자촌 마을을 배경으로 4가지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 이 역시 큰 의미로 옴니버스 소설로 볼 수 있다.

 

피카레스크 구성은 여러 개의 플롯이 병렬되어 있는 유형으로, 각각의 플롯이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전체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원래는 주인공이 유덕한 기사가 아니고 악한(picaro)이며, 로맨틱한 모험이 아니라 현실적인 소극이며, 대부분 악한의 뉘우침과 결혼으로 끝나는 스페인의 피카레스크 소설에 그 연원을 찾아볼 수 있다.

 

피카레스크 플롯이 사용된 소설에는 이광수의 군상, 김동인의 여인, 박태원의 천변풍경, 이문구의 우리동네 같은 작품이 속하는데, 이문구의 우리동네는 아홉편의 단편들로 이루어져 있고 각각의 등장인물이 모두 다르며, 서술상의 연속성도 거의 고려되지 않고 있다. 다만, 우리 동네라는 당시의 농촌 현실이 공통될 뿐입니다. 배경을 공통으로 하여 궁핍화된 농촌과 도시문화 그리고, 가치관의 혼란이 일어나고 있는 농촌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설명에서 보시다시피 옴니버스식 구성과 피카레스크 구성이 전혀 다른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초기에 구성을 나눌 때 단순구성, 복합구성, 피카레스크식

구성, 액자식 구성으로 분류했으나 그 당시에는 옴니버스식 구성이라는 말이 없었고, 피카레스크식 구성에 옴니버스식 구성과 연작(소설)이 모두 포함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 것 같다. 피카레스크식 구성은 어떤 조건하에 여러 개의 플롯이 병렬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배경, 주인공, 주제 등의 공통점에 따라)

 

앞에서 설명한 대로라면 난쏘공을 옴니버스식 구성에 포함시킬 수 없으나, 설명자에 따라 연작과 옴니버스로 구분짓기도 하고 포함시키기도 한다. 옴니버스라는 단어 자체가 소설분류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 실제로 옴니버스식 구성이라는 말이 문학개론 등의 입문서에 사용된 예는 거의 없는 것 같다.

 

14. 3음보 vs 4음보

 

1) 3음보

서민 계층의 리듬, 자연적, 서정적, 경쾌한 리듬, 가창에 적합, 동적 변화감과 사회 변동기 대변

 

2) 4음보

귀족 계층 리듬, 인위적, 교술적, 장중한 맛, 음속에 적합, 안정과 질서를 대변

 

3음보라는 것은 4음보처럼 2개로 딱 나눠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불안정합니다. 시대가 혼란스러우면 사람들의 정서도 불안정해지고 그래서 문학에서 그런 불안의식이 3음보라는 형식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렇다면 4음보는 그 구분상 2개로 나눠지기 때문에 안정적입니다. 그래서 시대가 평화로우면 그런 의식이 반영되어 4음보로 드러납니다. 또한 지배층은 자신들이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 사회의 질서가 유지(안정)되기를 바라고 이런 마음이 반영되어 4음보로 드러나지만 피지배계층은 이런 사회구조가 타파되고 새로운 사회를 꿈꾸기 때문에 3음보의 형식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위의 1), 2)의 설명은 이런 개념을 아주 간단하게 제시한 것입니다. 물론 이런 개념에 맞는 않는 작품들도 있을 수 있지만 큰 흐름속에서 이런 움직임이 나타나기 때문에 저런 도식을 이용해서 설명을 합니다.

 

15. 몽유록계 소설 vs 몽자류 소설

1) 몽자류(夢字類)소설

소설 제목이 '()자가 들어가며, ''이 작품 구조의 중요한 기능을 하는 소설. 대개 꿈이 삽입되어 있으며 작품 구성의 중요한 역할을 함.

)'구운몽' '옥루몽' '옥련몽' 옥린몽'

 

2) 몽유록(夢遊錄)소설

'꿈 속에서 노닐며 보고 듣고 체험한 것을 서술한 소설'의통칭. 작품 제명에 '몽유록'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것들을 묶어서 '몽유록계' 라고 이름.

)심의의 '대관제 몽유록', '원생 몽유록'

 

3) 차이점

'몽유록계''몽자류'는 모두 '현실--현실'의 환몽구조라는 점에서 일치함. 몽유록계는 주인공이 현실에서와 같이 꿈속에서 일을 벌여 나가는 유형이며 현실과 꿈은 단절되는 특수성을 지님. 몽자류는 꿈이 참된 세계가 아닌 헛된 세계라는 관점이 담겨 있는 유형이며, 내용상 현실과 꿈이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음.

 

 

15. 몽유록계 소설 vs 몽자류 소설

 

몽자류 소설은 글자 그대로 제목에 몽자(夢字)가 붙은 소설이다. 그리고 그 서사 구조는 환몽(幻夢)구조를 이루고 있다. 환몽구조란 주인공이 입몽(入夢) 과정을 거쳐 꿈속에서 새로운 인물로 태어나 새로운 삶을 체험한 뒤, 각몽(覺夢) 과정을 거쳐 심각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것이 공통의 환몽 구조이다.

 

서사구조에 있어서 몽자류 소설에서의 환몽 구조몽유록 소설에서의 몽유 구조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몽자류 소설의 환몽 구조에서는 주인공이 꿈을 통해 새로운 인물로 태어나 파란 많은 일생을 거친 뒤 죽어 본래의 자아로 되돌아오는 이야기가 3인칭 전지적 또는 관찰자에 의해 서술된다면, 몽유록 소설에서는 서술자가 꿈꾸기 이전의 자신의 동일성과 의식을 유지한 채 꿈속의 세계로 나아가 일련의 일들을 겪은 뒤 본래의 현실로 귀환하여 그 체험 내용을 스스로 서술한다.

 

, 몽자류는 현실과 꿈이 별개여서 꿈 안에서는 새로운 인물로 탄생되어 인생을 체험하지만, 몽유록은 현실과 꿈이 이어진 것이어서 꿈에서 일어난 일을 말한다. 때문에 몽자류의 현실 인식은 일장춘몽, 남가일몽의 성격이 강하고 몽유록은 현실 비판의식이 강하여 교술성, 서사성이 드러난다.

 

각각의 유형에서 ''의 의미는 몽자류에서는 현실, 꿈 모두가 의미가 있어 현실에 대한 깨달음을 꿈에서 알게 되는 역할을 하는 반면, 몽유록의 현실은 의미가 없고 단지 액자형식을 취하게 하는 장치이다. 따라서 꿈이라는 비현실적 세계에서 현실적 세계에 대한 비판이 강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구조는 같아 '현실-(입몽)--(각몽)-현실'로 되어 있다.

또한 환몽 구조의 꿈 부분은 그 전체가 유기적 사건의 연쇄로 엮어진 한 인물의 일생담이지만, 몽유 구조의 꿈 부분은 서술자가 다수의 인물들을 만나 이야기를 주고받거나 그들의 모임에 참석하여 보고 들은 내용으로 이루어진다.

 

몽자류 소설의 효시는 김만중 <구운몽>이다. 이후 남영로의 <옥루몽>과 그 이본으로 볼 수 있는 <옥련몽> 그 외 <옥린몽>, <옥선몽> 등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몽유록의 효시는 임제의 <원생몽유록>이며, 그 외의 작품으로는 심의의 <대관재몽유록>, 그리고 <사수몽유록>, <부벽몽유록>, <강도몽유록>, <피생몽유록>, <달천몽유록> 등이 있다.

한편 <금오신화金鰲新話>의 다섯 단편은 모두 몽환적(夢幻的) 요소를 가지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 <남염부주지南炎浮州志>, <용궁부연록龍宮赴宴錄>등은 몽유록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는 작품들이다.

 

16. 비유 vs 상징

 

상징과 대표적인 비유법인 은유는 어떻게 다를까요? 은유법은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관계가 일대일의 대응 관계를 이룹니다. 말하자면 원관념 하나에 보조관념도 하나입니다. 이에 비해 상징은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관계가 다()대일()입니다. 즉 보조관념은 하나지만 그 원관념은 여럿일 수 있지요. 예를 들어 이상화의<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서 봄이 상징하는 것은 일 년 사계절 중의 하나인 봄[]일 수도 있고, 우리 나라의 독립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평자에 따라서는 전통적인 관습이 없어진 상태를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비유는 원관념과 보조관념 사이에 공통성을 기반으로 하지만, 상징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비유의 일종인 대유법이 쓰인 표현인 '인간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라는 표현에서 '''식량'은 서로 공통성(유사성)이 있습니다. 문맥상 식량을 대신하여 빵을 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관계(원관념:보조관념)1:1입니다.

그러나 상징은 원관념과 보조관념이 서로 공통성에 기반하지도 않지만 그 둘의 관계가 :1입니다. 가령, '눈 속을 헤치며 산수유 열매를 따 오셨다'라는 구절에서 ''은 고난, 고생, 순수를 상징하고 '산수유 열매'는 고생을 다하여 따 오신 정성과 사랑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열이 펄펄 나는 자식을 위한 아버지의 사랑은 순수하고 강하며 고생과 고난으로 인해 더욱 값진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상징적 표현입니다. '=순수/고난/고생', '산수유=사랑/정성' 등에서 공통성에 기반한 것임을 알 수 있게 하지는 않지요.

 

17. 감정의 대위법 vs 역설(모순 형용)

1) 대위법

두 가지의 상대적인 분위기나 정경, 주제 등을 일부러 결합시켜 작품을 구성하는 수법

감정의 대위법’ : 작가 자신의 대비되는 감각이나 심사를 상대적인 것과 대위시킴으로써 감정을 나타내 보이는 것

 

대위법(對位法 counterpoint)이란 원래, 음악 용어로, 음악에서 독립성이 강한 2개의 선율을 동시에 결합시키는 작곡상의 기법을 말합니다. 문학에서는 감정의 조절 또는 절제를 위해서 상호 모순되거나 대립되는 시어를 결합하여 감정을 객관화시키는 방식이 있는데, 이를 가리켜 '감정의 대위법'이라고 합니다.

 

정지용의 '유리창1'에서도 죽은 아이로 인한 외로움과 그 아이의 영혼과 교감하면서 느끼는 황홀함이 교차하는 순간을 '외로운 황홀한 심사'라고 하여 '외로운이라는 감정 다음에 '황홀한'이라는 감정을 덧붙이고 있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외로움의 감정이 황홀함의 감정에 의해 절제되고 있습니다. 또한 '차고 슬픈 것' 역시 슬픈 감정이 차가운 감각에 의해 절제되고 있는 표현은 '감정의 대위법'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 하나의 감정을 표현하면서 그와는 다른 감정이나 감각을 결합하여, 그 감정에 일방적으로 빠져드는 것을 막는 수법을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외로움

-----------------------> 외로운 황홀한 심사

황홀함 감정의 절제(감정의 대위법)

 

2) 역설(모순 형용)

역설은 일상적인 언어 구사법을 일탈한, 모순된 표현(상황). 언어적 표현이든 상황이든, 역설은 비논리적인 것이 특징. 작가는 역설의 일탈된 표현을 통해 대상이 함축한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며, 독자는 그 과정에서 이면에 내재된 가치(의미)를 깨닫게 됨.

 

3) 대위법과 역설(모순형용)의 관계?

시 양식은 정서를 표현하는 문학 갈래이기에 감정의 대위법이 나타난 시구는 대개 역설(모순 형용)에 해당. 하지만 역설이 반드시 감정의 대위법이 되는 것은 아니다.

'외로운 황홀한 심사''찬란한 슬픔의 봄'은 감정의 대위이자 역설에 해당하지만, '소리없는 아우성'은 역설(모순 형용)에 해당하면서도 감정의 대위로 볼 수는 없음.

 

18. 대조 vs 대비

대비는 색채 등의 외형상의 특징을 서로 맞대어 나타내는 방법이지만, 대조라고 하면 의미상의 강조효과를 노리고자 반대관계를 나타낸 방법입니다.

그래서 형식(표현)상의 대비와 의미상의 대조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표현상의 대비는 의미상으로도 대조의 효과를 가지는 예가 많습니다.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강낭꽃보다도 더 푸른 그 마음'이라는 표현을 예로 들어 보면, 색채의 대비가 나타나 있고 논개의 애국혼을 색채대비를 통해 강한 성격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는 색채 대비를 통해 그 의미가 대조됨으로써 강한 애국적 정열을 느끼게 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19. 암시 vs 복선

암시와 복선의 구별이 확연한 것이 아닙니다.

암시가 뒤에 나올 사건이나 행동 등을 넌지시 알리는 기능을 합니다.

그런데 암시는 꼭 문학 작품 속에서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일상 생활 속에서도 쓰입니다.

암시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1넌지시 알림. 또는 그 내용. ¶암시가 깔리다/암시를 받다/암시를 주다/나라의 운명을 이순신이 홀로 바다 위에서 일으켜 놓았을 때, 이순신의 친구는 비로소 이 꿈은 하늘이 준 암시였던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박종화, 임진왜란

2」『뜻하는 바를 간접적으로 나타내는 표현법. 암시법.

3」『감각, 관념, 의도 따위가 이성에 호소함이 없이 언어 자극을 통하여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는 현상.

 

그러나 복선은 소설 속에서만 쓰이는 용어입니다.

, 구성상의 필연성을 부여하기 위해 앞으로 일어날 사건을 위해 미리 설정한 소재나 예비 사건을 말합니다.

그리고 문학 속에서 쓰일 때 둘의 뜻이 비슷하기 때문에 복선과 암시는 구별되지 않고 쓰이는 경향이 있습니다.